홍준철    사랑하는 이름 앞에서 2016/04/29
  L1000529_(1).jpg (619.0 KB)   DOWNLOAD : 5





스승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이름 앞에서......, )

  이강숙 선생님을 정식으로 뵌 것은 1996년 2월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셨던 선생님을 만났고 이후 나는 그분에게 홀려 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기금 재단 사무국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나는 측근이나 제자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2001년까지 총장으로, 이후 석좌교수로 계시면서 나와는 20년 동안 함께한 분이다. 나는 총장님이 보다는 선생님으로 불렀다.


선생님은 자신을 대부분 바쳐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사셨다. 이강숙으로 사신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0여년의 재임기간 동안 학교건물 신축, 예산, 6개원 개원, 교수초빙, 새로운 예술교육기반을 완성하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완성된 모습은 바로 이강숙 선생님 재임기간에 만드신 것이다.


나는 선생님을 보좌하면서 자신의 일에 목숨을 걸고 하시는 것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장관급 국립대학 총장이었으나 학교를 위해서라면 직급이 낮은 공무원 앞에서도 머리를 조아렸고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위해서라면 주무 장관과도 싸우셨다. 반대하는 부하직원을 설득하느라고 매일 저녁 술자리를 마련하기도 하셨다.


밥은 순대국밥, 콩나물비빔밥, 술은 소주와 맥주를 탄 폭탄주 정도가 그분이 누리는 호사였다. 영혼은 높은 곳을 지향하셨지만 입맛은 매우 촌스러우셨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다. 우리들이 잘난 체하거나 거만을 떠는 순간 박살이 날 정도로 혼을 내시시도 했지만 그 역시 사랑의 발로였지 편을 가르기 위한 싸움이 아니셨다. 그러니 그분 자신이 권위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타인들에 의해 그분의 권위가 세워지고 유지되는 모습도 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누리려한다. 하지만 그분은 먼저 일하려 했다. 아마 국립대총장의 위상을 과시하고 부여되는 권력을 탐했다면 이강숙 선생님은 그 많은 일을 이루지 못하셨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시간을 산다. 산다는 것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하여 시간을 쓰는 것이 사는 것인 텐데 이분은 언제나 학교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쓰시고 정년퇴임하셨다.


2015년 2학기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2학년 학생들을 위해 초대총장이셨던 선생님을 모셨다. 학교를 만드신 선생님과 지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목은 ' 나의 사랑,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정했는데 마음에 드신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이때도 혼신의 힘을 다한 열강을 하셨다. 준비하신 게 너무 많았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야한다는 마음이셨기에 시간도 훌쩍 넘기셨다. 그리곤 점심식사 때 기분이 좋으셔서 간만에 폭탄주를 거나하게도 드셨다.


댁으로 모셔다드리는 차안에서 선생님은 '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라는 단어만 나오면 눈물이나요. 꼭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처럼 말이죠.......,’


나는 그 말에 더 눈물이 났다. 어쩌면 저렇게 외골수로 사랑할 수 있을까?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름을 보면 눈물을 흘리시는 걸까? 나는 그럴만한 이름을 하나쯤 가지고 있나? 너무도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더 주지 못해 그 이름 하나로 눈물이 나는 선생님이 부러웠다.


음악을 하는 마음도 선생님 같은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음악이 살아 움직이고 영혼을 만지고 온전한 모습이 될 것이다. 진실로 나를 갈아 만드는 음악이 무엇인지 선생님의 삶에서 배운다. 척박한 우리 사회에 어른으로 존경할 만한 분이 많지 않은 시절을 살면서 이강숙 선생님을 모신 것은 더 없는 행운일 것이다. 나도 선생님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다.  


  김미옥 단장님을 향한 선생님의 절절한 마음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이강숙단장님..존경합니다
    2016/04/29
   대답 없는 질문 ‘우리의 음악통념은 참 된가?’ [4]  홍준철
   이제 시작하는 합창지휘자들에게 [2]  홍준철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Y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