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2009년 12월 22일 만해마을에 다녀와서 2016/08/03
20091222 만해마을에 다녀와서

만해마을에 왔습니다. 물론 이강숙 선생님 뵙고 싶어 온 것이기도 하지만 그간 정신없이(특별히 2학기는) 지내온 터라 유일하게 낼 수 있는 시간에 ‘ 나를 바라보고 싶다 ’ 라는 욕심에서 홀연 출가를 하였습니다.

1. 싱싱하게 흐르자

만해마을 오는 길에 한강은 꽁꽁 얼었더군요. 그야말로 은색의 커다란 빙판이었습니다. 한데 백담마을에 방을 잡고 무심코 본 창밖의 개울물은 얼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거대한 강도 어는데 어찌 저런 작은 개울이 얼지 않을까?.’하며 신기했습니다. ‘ 물이 따듯한가?’ 1급수는 깨끗해서 2급수인 강물보다 훨씬 빨리 어는 게 맞겠지요.

개울 주변에는 좀 얼었어도 중심부는 깊고 푸른 바닥을 보이며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싱싱해 보였습니다. 거침없는 물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운동량을 가진 물은 얼지 않습니다. 도시 얼어버릴 틈을 주지 않는 것이죠. 또한 움직이는 물은 열을 발산 할 것입니다. 한참을 개울만 바라보았습니다.

‘ 사람도 저리 싱싱하게 살아야 하는 구나, 음악도 거침없이 흘러가야 하는 구나 ’......나는 그간 저렇게 살았나? 음악은 거침이 없었나? 얼마나 많은 순간을 머뭇거리고 안절부절 못했던가? 찌질하게 흐르듯 말듯 하지 않았던가?  개울물이 선생님입니다.

2. 밤길

산사의 밤은 일찍도 찾아오고 길고 깊습니다. 저녁 먹은 6시 이후에 산책이라도 나설라치면 칠흑 같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동지(冬至)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어둡고 무섭습니다. 가지말까? 하는 생각이 몇 번씩이나 듭니다. 길을 나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는 또 망설이고 있는 것이죠. 그런 내가 미워서 일부러 오기를 부리고 걸음을 뗍니다. 맞바람을 견디며 12선녀탕 입구까지 걸어갑니다. 밤길은 신기하게도 가면서 익숙해집니다. 한기도 사라지고 안보이던 길도 갈수 있을 만큼 보이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은 바람을 등지고 걷기에 훨씬 편안합니다. 길이 있다고 믿으면 가야합니다. 주저주저하다가는 고인물이 되어 얼어버리니까요.    

3. 외로움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정막이 감돕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답니다. 텅 빈 방에 형광등 하나와 나만 있는 것 같습니다. 한번 외로움이 몰려오면 정신 못 차립니다. 감옥이 따로 없습니다. 참으로 혼자 있고 싶었음에도 혼자 있으니 또 외롭다고 투정입니다. 떠나면 되돌아가고 싶고 되돌아가면 떠나고 싶은 게 사람인모양입니다. 그러니 이곳의 문인들은 참 대단합니다. 이강숙 선생님도 대단합니다. 외로움을 견디며 2달씩 칩거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달련된 도사들 같습니다. 산속의 스님들은 더 하겠지요. 이곳 문인들의 방은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창문에는 산이 보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산... 그 기와 인내를 배우라는 것일 겁니다. 그러면서 엉덩이 붙이고 독하게 글을 써대는 힘을 기르나 봅니다.

지금이 열시반인데 벌써 배가 고파집니다.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는데도 이 모양입니다. 컵라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처음처럼 한 병이 나를 유혹합니다. 아! 나는 또 망설이고 있습니다.

4. 이강숙 선생님

선생님은 아직도 청년입니다. 그 맑은 정신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장편소설을 쓰고 계십니다. 발에 통풍이 오셔서 잘 걷지 못하십니다. 오후에 슈퍼 가는 길을 모셔다 드렸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 내가 서울에서 음악계의 원로이니 음악회도 가고 평론도 쓰고 폼 재고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아픈 몸을 하고 산골짜기에서 뭐하느라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 그럼  서울에서 사시지요?’
‘ 아니!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 시시해져버렸어, 소설 외에는 내 눈에 들어오질 않는 거야’ 하십니다. 목표가 분명하신 선생님은 늙지 않으십니다. 음악에서 교육으로 다시 소설로 변신하는 삶이 선생님다워 보입니다.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 20주년사를 탈고하며 [3]  홍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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