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자동차와 음악 2004/01/26
운전을 하다보면 운전하는 것과 음악을 하는 것의 메카니즘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수있다. 악셀을 밟는 것은 점점 음악의 속도를 빠르게 몰고가는 악첼란도(Accelando)와 같고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는 것은 리타르단도 (Ritardando), 차가밀렸다가 다시 제속도를 회복하면 아 템포(a tempo), 약간 서는 듯 하다가, 또는 정지했다가 출발하면 느림표 페르마타(Fermata), 저단 기어를 놓고 언덕길을 힘주어 올라가면 크레센도(Cresendo) 내리막엔 그 반대인 디미뉴엔도(Diminuendo), 끼여들기로 차간격을 좁히면 불협화음, 다시 넓히면 협화음..... 신호등은 악상기호, 자동차는 음표, 교통경찰은 지휘자..... 등등 모든 것을 음악과 절묘하게 같다. 더구나 등속 60km/h로 커브길을 내려오는 느낌은 빠른 Vivaldi 작품이나, Bach의 Fuga를 연주하는 느낌과 같다. 등속(가속도 = 0)인 상태의 자유로움은 음악에서도 매우 요긴하게 쓰는 해석방식이다.  

이런 것이 가능한 까닭은 음악의 흐름이나 자동차의 흐름의 방식이 운동성(Energy)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의 운동성은 자동차 보다도 더 정교해서 서고 가는 평면상의 움직임이 뿐만아니라 뜨고 앉는 3차원에다 고체부터 액체와 기체로 승화되며 시간을 넘나드니 4차원, 그속에 감동이 수반되는 영혼의 움직임까지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차원 높은 운전이다.  

그래서 생전의 작곡가 나운영선생은 ‘ 음악하는 사람이 자동차 운전중 사고로 죽으면 잘 죽은 것이다. 음정 박자 못지켜 사고가 난 것이니 살아있어봐야 음악에 폐만 끼칠 뿐이다’ 라는 말씀을 자주하셨나보다.

요즘 운전을 하면서 다시금 깨닭은 진리 하나는 차선 변경이다. 차량의 수가 많을 수록 차선 변경은 어렵다. 아니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양보를 해주어야만 차선 변경은 가능하다. 내 앞길을 남에게 양보함으로서 나도 남의 앞길을 양보 받는 것이 차선변경의 철칙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배려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어찌 이 진리가 차선 변경에 국한될 것인가?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서 독창이나 독주도 반주의 양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합창의 하모니도 자신의 소리를 죽여 남과 함께하려는 마음가짐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더 나아가 삶의 자리에서도 누군가의 끊임없는 도움을 받으며 지금의 자리에서 그만큼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어찌 남의 도움 없이 자신이 모두 이룬 일이라고 자랑 할 수 있으며 투정만 부릴 수 있을까? 또 어찌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단말인가?  

생각을 하면서 운전을 하면 음악을 더욱 깊이 있게 알며 인생의 진리를 깨치는 비법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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