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주    나는 오르가니스트이다. 2013/04/01

나는 오르가니스트이다

 

내가 반주하는 합창단의 한 단원이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선생님! 지휘자선생님은  ‘누구누구 지휘자님!’이라고 부르는데, 왜 선생님은 반주자 박선생님도 아니고  ‘오르가니스트 옥쌤이라고 부르나요?” 말을 축약해서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현대인의 성격을 그대로 살린 말이긴 하지만 어느덧 그 말은 나의 애칭이 되었다.

흔히 우리는 오르가니스트라는 말보다 반주자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반주자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성악이나 기악에서 노래나 주요 악기의 연주를 보조하거나 부각시키기 위한 연주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오르가니스트는 다른 악기를 보조하거나 부각시키는 역할 뿐 아니라 오르간이라는 악기를 독자적으로 연주하는 좀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연주자를 말한다. 그래서 나는 성악이나 다른 악기와 함께 어우러져 연주한다는 의미에서 오르가니스트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다소 우리에게 낯선 오르간이라는 악기는 사실 굉장히 오랜 역사를 지닌다. 우리에게 익숙한 피아노가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의 성격을 갖는다면 오르간은 파이프에 바람을 넣어 소리를 내는 관악기의 성격이 강하다. 성경에 수금과 비파로 노래할 찌어다라는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온 관악기의 성격을 건반에 적용시킨 악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오르간 중 가장 오래된 악기는 기원전 246년에 발명된 것으로 물의 힘으로 바람을 공급하는 물 오르간(Hydraulis)이다.[1] 그렇다면 오르간은 처음부터 교회에 존재했을까? 초기의 오르간은 당시의 다른 악기보다 비교적 큰소리를 가진 특징으로 인해 일반군중들의 집회나 집권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예식 등 주로 회중의 주목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2] 이후 11세기 수도사들에 의해 수도원교회에 오르간이 들여오면서 교회의 전례를 이끄는 중요한 악기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 오르간은 혼자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었다. 연주자가 연주하는 동안 오르간 뒷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풀무장치를 이용하여 계속적으로 바람상자에 바람을 저장해야만 했다. 하지만 전기와 모터가 발명되고 다행히 그들의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었다. 점차적으로 제작자들에 의해 오르간이 대형화됨에 따라 수많은 오르간 작품들이 작곡되고 오르간은 일명 악기의 왕으로 그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교회나 성당에서만 볼 수 있는 종교적인 악기로 다른 악기에 비해 악기가 지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 받고 있다. 즉 오르간 음악을 들으려면 청중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는 상관없이 소수의 공식적인 연주장소 외엔 교회나 성당을 찾아 그 음악을 감상할 수 밖에 없다. 종교적인 색채만이 강조되어 일반 대중과 격리 된다면 오르간은 그 생명을 잃은 악기가 되고 만다.

 

오르간이 한국교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한일합방 후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풍금을 사용하면서부터이다. ‘풍금(風琴)은 말 그대로 바람을 넣어 소리를 내는 악기로 페달에 연결된 풀무를 이용하여 바람을 넣어 건반과 연결된 파이프에서 소리가 나는 악기이다. 특히 풍금은 리드파이프(Reed Pipe)[3]가 연결되어 리드오르간이라고도 한다. 그 당시 초등학교에서 또한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고가의 피아노에 비해 그 규모가 작고 설치에도 용이하기 때문에 선호 한 듯하다. 오르간은 한국의 1세대 오르가니스트들의 노력으로 많은 교회에 오르간이 설치되어 예배를 경건하게 이끌어나가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등장으로 예배에서 오르간은 그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심지어 오르간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몇몇 대학에서는 폐과의 위기에 놓이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오르간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실력은 매우 향상되어 현재 많은 오르가니스트들이 세계의 유명한 콩클에서 당당히 입상하는 등 그 실력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 청중에게는 어려운 음악, 익숙치 않은 악기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오르간의 매력을 알고 친숙해졌으면 좋겠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오르간과 함께 숨을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르간은 인간을 많이 닮은 악기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 하시고 그 안에 영, 즉 숨을 불어넣으셨듯이 오르간도 숨을 넣어 연주자와 함께 호흡하는 하나님의 악기이다. 오르간에 앉아 연습을 할 때면 '이 녀석, 나랑 함께 숨을 쉬고 있구나' 하는 가슴 뛰는 짜릿함을 자주 느끼게 된다. 참 매력 있는 녀석이다.

세상에는 똑같은 오르간이 없다. 물론 어떠한 목적으로 몇 개의 오르간을 함께 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같은 오르간이라 할지라도 그 규모, 설치하는 공간, 음향 등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같은 곡도 서로 다른 오르간에서 음색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항상 새롭고 색다른 소리를 체험하게 된다. 오르간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예전에 독일에서 마지막 과정을 공부하던 당시 나의 스승 볼프강 륍잠(Wolfgang Ruebsam)[4]이 이런 말을 했다. ‘오르가니스트는 비행기 조종사와 같다. 복잡한 장치들을 움직여 그 큰 덩치에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로 안전하게 비행하는 비행기 조종사처럼 오르가니스트는 큰 덩치의 악기에 달려있는 복잡한 단추를 사용하여 수많은 청중들에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는 사람이다. ,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행복한 오르간 음악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르가니스트이다. ‘반주자 박옥주보다 오르니스트 옥쌤이 더 좋다. 가끔 교과서에 읽었던 피천득님의 메모광이라는 수필을 떠올리게 된다. ‘()이라는 뜻이 말해 주듯 한가지에 미치도록 몰두한다는 것, 그때는 정말 바보스럽고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떤 것에 미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다. 한 명의 오르가니스트로서 나만의 음악, 너만의 음악이 아닌 청중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음악을 하고자 여러 가지 무모한 시도를 해보는 중이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미치도록 그 매력에 빠져보고 내면으로부터 전해지는 감동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오르간 음악을 통해 편안하고 행복한 비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하나님의 악기를 전하고 싶은 음악선교의 신념이고 내가 오르간을 연주하는 이유일 것이다.



[1] 파이프오르간’ : 프리드리히 야콥 지음, 박소인 옮김. 대한예수교장로회출판국

[2] 파이프오르간의 이해’ : 채진수 지음. 도서출판 마루

[3] 리드파이프(Reed Pipe) : 리드9Reed)는 흔히 오보에나 클라리넷 같은 목관악기에서 자세히 볼 수 있는데 이를 모방하여 파이프 내에 얇은 금속판을 설치하여 그 사이로 바람을 넣어 소리를 낸다.

[4] 그는 오르가니스트이면서 음반을 제작하는 음악 프로듀서이며 비행기 조종사이자 항상 학생들에게 웃음을 주는 이발사이다. 독일 자부뤼켄 국립음대 교수였고 퇴임 후 미국에 거주하며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활동 중이다



  문혜심 옥주쌤의 악기에 대한 자부심~ 음악가로써의 자존심이 물씬 풍기는 글입니다. 옥주샘 덕분에 저도 오르간소리에 많이 친숙해졌어요^^     2013/04/01
  최경은 멋지십니다..~~ 훌륭한 오르가니스트와 함께해서 넘 행복해요~~^^     2013/04/02
  김미옥 오르가니스트 옥쌤~ 당신이 있어 음마는 '무한행복'임을 고백합니다~함께 숨을 쉬는 혼연일체의 우리를 꿈꾸어봅니다~^^     2013/04/02
  홍준철 와우~~~멋지십니다. 글맛이 장난이 아니무니다. 저도 긴장해야 겠네요. 멋진 코너로 만들어 주심에 감사. 옥쌤글이 콰이언앤 올간에 정기적으로 실리는 쾌거까지...     2013/04/03
  이혜연 주석까지!! 캬아~ 표절시비는 안 휘말리시겠네요 ㅎㅎㅎ     2013/04/05
  고유진 오르간 음악은 저에게도 여전히 어렵고 지루하고 보수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재밌는 오르간, 매력있는 오르간으로 바뀔 수 있게 도전하는 오르가니스트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래서 옥쌤의 겂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미지가 안떠요. 이거 해결해야 할 거 같아요.
    2013/04/18
  전소영 비행기 조종사라는 비유가 와닿아요~
오르가니스트 옥쌤 덕에 저희도 오르간과 함께 호흡하고 노래할 수 있네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D
    201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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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합창, 이제는 세계로 나간다. [8]  홍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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