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주    악보를 본다는 것 2013/04/17

악보를 본다는 것

 

어린 시절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한번쯤 바흐(J. S. Bach:1685-1750) 인벤션(Invention) 접해보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악보는 아주 친절하게 손가락번호와 셈여림 등 여러 음악적인 표현법을 기재하고 있다. 그러나 바흐가 그린 필사본 악보를 보면 음표와 간단한 표현법외에는 아무것도 표기되어 있지 않다. 여러 출판사에서 그의 악보를 출판하면서 편집자의 의견을 악보에 삽입했기 때문에 여러 표현법이 쓰여 있는 것이다.

 

오선 악보가 등장한 것은 인쇄술이 발달하는 15세기 후반 거의 16세기부터이다.[1] 악보출판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전의 악보들은 작곡가가 직접 채보하였고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음 하나하나 일일이 그려서 팔았다. 또는 연주자의 연주를 듣고 채보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당시 사람들은 우리보다 청음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음악에 열정이 많았던 그는 공부하고 싶은 악보을 구할 수 없어 반딧불을 잡아 밤새 그 불빛에 의지하여 다락방에 숨어 형의 악보를 몰래 채보하여 연주하였다고 한다. 또한 바로크 작곡가 북스테후데(D.Buxtehude : 1637 ~ 1707 )는 독일 뤼벡(Luebeck)의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하면서 많은 제자를 두었는데 그가 즉흥 연주를 하면 제자들이 그의 곡을 듣고 채보하여 연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곡가는 여러 제자들이 채보한 악보만이 존재하여 현재에도 서로 다르게 채보된 악보에 대한 논란이 많다.

 

<그림 1>                              

 

 이 하트모양의 악보<그림 1>는 장드 몽쉬뉘(Jean de Montchenue)라는 작곡가의 샹송(Chanson)[2] 악보인데 표면적으로만 보아도 사랑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음악과 시와 작곡가의 감성이 결합된 악보라 볼 수 있다. 이 악보에는 빠르기 말이나 느리게 또는 빠르게 연주하라는 지시어가 하나도 없다. 단지 악보만 보고 가사가 담고 있는 애절한 사랑의 마음을 부르는 이의 가슴으로 노래하면 된다.

 

음과 음이 시공간에서 만나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 바로 그것이 음악이다. 음악은 신의 축복이다. 그 신비로운 현상을 길이길이 전하고자 인간은 채보를 하기 시작했고 여러가지 기보법을 발달시켜 현재의 악보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가끔은 너무 자세한 악보에 연주자의 생각과 감정이 제한을 받는 건 아닌지 아쉬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 2> J. S. Bach : Violin Sonata Nr.1 BWW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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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언급했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음표 외에 아무 표기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바흐는 자신의 곡을 연주할 연주자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 당시 표현법이 많이 발달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모국어를 사랑한 바흐의 경우 원했다면 독어로 표현법을 지시했을 텐데…. 똑같은 곡도 연주하는 장소에 따라 항상 다르게 연주했던 바흐는 아마도 악보가 연주로 다시 만들어질 때 항상 새롭게 창조되기를 바랬을지 모른다. 현재 바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가 그린악보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로 음표의 모양을 꼽는다. 바흐는 여러음표의  묶음꼬리를 그릴 때 일직선으로 그리지 않고 선율을 담은 듯 위 아래로 출렁이는 곡선으로 그렸다.<그림 2> 그의 칸타타를 연주하다 보면 음표만 보아도 그의 고풍스러운 음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원전 음악을 하는 연주자들은 바흐의 원래 악보를 참고하여 연주한다. 작곡가의 의도를 직접 느끼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가 아는 어느 한 지휘자는 악보를 볼 때 악보의 뒤를 보라고 말한다. 악보가 담고 있는 생각과 그 의미를 읽으란 뜻일 것이다. 음과 음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에 따라 사랑을 표현하기도, 증오를 표현하기도, 거침을 표현하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음과 음의 연결은 가사와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음회화법(Tone-painting)이 그 하나의 예일 것이다. 간단한 원리만을 언급하면 상행하는 음은 기쁨과 환희적인 내용을 담고 하행하는 음은 좌절이나 슬픔, 반음계적인 진행은 고통, 고뇌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건용 샘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작품을 잠시 살펴보면 많은 부분 이런 논리가 적용되어 예수님의 죽음과 수난 당하시는 부분에서는 반음계를 많이 사용하였고<악보 1> 장례식 장면에서는 하행하는 음을 사용하여 눈물을 표현하기도 했다. <악보 2>

 

<악보 1> 이건용 : ‘예수그리스토의 수난20. 아버지여 제 영혼을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표현한 반주부분

 

 

<악보 2> 24. 묻히시다 : 장례행렬에서 곡하는 소리를 표현한 부분

 

 

악보를 본다는 것은 분명 음표를 읽는다는 뜻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선지에 그려져 있는 음들의 조합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읽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현상 속에서 어떠한 감정과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새로운 악보를 받아 공부할 때 음을 익혀서 연주하는 데에 주력하느라 소중한 연습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를 많이 자주 된다. 작품이 담고 있는 음악적 이미지가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보는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악보의 뒤를 보는 첫 번째 시작일 것이다.

 



[1]음악기보법의 역사’ : Jean-Yves Bosseur 지음, 민은기 옯김, E&B Plus. 2010.

[2] 샹송(Chanson) : 스페인의 칸시온이나 이탈리아어의 칸초네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는데 프랑스의 대중적인 노래를 의미한다.



  김미옥 악보가 담고있는 의미와 생각~악보의 뒤를 보기위해 우린 부단한 노력을 해야할 듯~옥주쌤~땡큐~^^     2013/04/17
  고유진 역시.. 부단한 연습만이... 악보는 또다른 언어의 문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3/04/18
  윤영희 아마도 악보가 연주로 다시 만들어질 때 항상 새롭게 창조되기를 바라는.. 음과 음이 지금 여기에서 만나 우리의 노래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     2013/04/18
   꽃보다 표  홍준철
   나는 오르가니스트이다. [7]  박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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