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연    만화 [천국의 신화]와 횡설수설 2000/10/11
만화가 이현세가 1977년 겨울부터 작심하고 한국을 포함한 동양의 상고사(上古史)를 다시 짚어보는 [천국의 신화]라는 만화를 펴냈다. 세간에는 원시인들의 집단성행위, 동물과의 성행위, 잔인한 토막 살인장면들을 염려했다. 총 11권으로 3부까지 구성된 이 만화는 서양의 창조설과 진화설과는 달리 동양(중국을 중심으로 한)의 창조신화를 풀어내고 있다. 태초에 하늘님이 계시고 오름(자부선인)과 내림(서왕모)이라는 자식이 있었으나 이 둘은 서로 달라 666일 동안 싸워 하늘님이 500년 동안 가두었고 기(氣)로서 존재하였다. 태양과 달로 상징되는 이들의 기는 황토족, 천족으로 이어지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다. 조금 거칠기는 하지만 B.C 2700경까지의 동양의 역사를 만화로 풀어내는 이현세의 내공이 놀랍다. 이현세는 이 천국의 신화의 진행을 동양의 신화에서 한반도의 창조신화로 연결하고 한국의 역사를 현대까지 이어버리는 총 기백권의 전집을 완성하겠다는 생각도 있다고 들었다. 과연 그다운 생각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천국의 신화]는 2000년 들어서 청소년용을 따로 만들어 배포했다가 판사에게 유죄판결을 받아 3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다. 물론 만화를 펴내는 사람들의 속성이라는 게 윤리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장사가 않될테니 적지 않은 볼거리와 충격요법, 그리고 긴장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으나 이번 만화는 상당히 자극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인정된다. 경건주의자들이 반발을 할만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공권력의 상징인 판사가 유죄판결을 냈다는데 있다.

영화 [거짓말]이 그랬고 서갑숙의 [나는 가끔 포르노그래픽 주인공이고 싶다], DJ. DOC의 [5집음반] 등 가만 나두면 별일 아닌 것을 두고 국가가 호들갑을 떤다. 의도했던 광고처럼 말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히트를 치는 방법은 야하고 폭력적이고, 욕 많이 넣으면 광고는 국가가 나서서 해주니 땅 집고 헤엄치기가 된다.

아마 국가는 도를 넘어서는 작품들을 사람들과 격리시켜놔야 물들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백성들을 철없는 어린애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자기들은 실컷 보고 나서 우리는 보지 말라고 한다고 우리가 안보나? 궁금해서 더 보지. 또 자기들이 보고 나서 판단기준이 있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나 보다.

나는 중학교 시절 그 유명한 [꿀단지]라는 삼류중의 삼류 외색소설도 보았고, 성기가 다 보이는 [포르노 비디오]도 보았다. 그러나 감수성 예민한 그때에도 크게 영향을 받은 것 같지 않다. 충분히 면역할 수 있는 건강함이 있다는 말이다. 즉 어떤 우려스런 작품들이 나오더라도 국가가 제발 나서지 말고 온당하게 시민단체나 시장논리에 맡겨야 한다. 독자가 판단하고 독자가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금방 옥석이 가려진다. 거짓말이라는 한심한 영화를 그냥 한심한 수준으로 놔두는 것은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길이다. 그리고 [천국의 신화] 청소년판을 유죄판결을 내렸는데 우리 청소년들은 이미 성인용으로 다 보았고 더한 내용도 이미 섭렵을 한 청소년들이다.

이현세가 심혈을 기울이는 한국의 상고사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현세에게도 한마디하고 싶다. 비록 청소년판에 제동이 걸리기는 했지만 `외국에 가서 작업을 하네' `한국이 싫네'하는 말이나 생각은 금물이다. 언제는 우리의 형편이 그리 자유스럽기만 한 적이 있었나. 더구나 막장 끝에서 새로운 길을 내는 사람이 겪는 일이야 뻔하지 않은가. 그 정도 일 가지고 대세를 엎을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을 사랑하면서 지속적인 작업을 해주기를 기원한다. 11권까지 본 필자로서는 흥미진진하고 날밤을 새울 정도로 흡입력이 [천국의 신화]에는 있었다. 특별히 발기달, 치우, 미리내의 사랑이야기는 그야말로 진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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