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P님에게 2002/02/19
기자생활 10년이 되었다는 자전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신참 수습기자시절의 마음들을 생각하고 계시더군요. <처음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을 붙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몇 일 동안 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모습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근 20년 동안 성공회라는 교회에 다니면서 소위 <사제 서품식 : 개신교의 목사안수식>이라는 것을 거의 모두 보아오며 살았습니다.

성가대로 봉사하다 보니 얻게된 행운인데 그런 중에 주교승좌식도 5번이나 보았고요, 대주교승좌식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 중에 제 가슴에 백미로 남아 있는 것은 해당자들이 백색의 예복을 입고 바닥에 모두 엎드려 기도를 드리는 예식입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을 죽이고 세상을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겠다는 상징적인 행위로 그 어떤 예식보다도 감동 있어서 제가 사제가 되는 미련을 아직도 다 버리지 못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들은 누워서 눈물어린 각오를 한다고 합니다. '나는 죽었다. 이 백색예복이 나의 죽음을 뜻한다. 즉 이제 일어나는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신의 허락으로 덤으로 사는 인생일 뿐이다. 그럼으로 나는 이제부터 신의 섭리대로만 살뿐이다'.......

누구나 처음 시작 때의 각오를 더러는 잊기도 하고 더러는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P님은 오랫동안 문화부 기자로 생활하다가 이제는 국제부에 계시는군요. 욕심 같아서는 문화부에서 평생을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문화부 기자 중에 문화를 만들어 내는 일에 참여하시는 분이 별로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P님은 그래도 합창단에서 출석과의 싸움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삶 중의 하나로 여기고 계시다는 점을 저는 높이 삽니다. 물론 문화를 몰라도 문화부 기자는 가능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하나의 축을 몸소 실행하고 계시다는 점이 문화를 단순한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고 진화하는 유기체로까지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다는 점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사제나 기자나 세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자가 어떤 논조로 글을 쓰느냐는 사제가 어떤 마음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세상에 설파하는 것과 같고, 교회는 많은데 세상은 별로 착해지지 않는 현실은 신문은 많은데 정의는 오히려 죽어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저는 P님이 있는 신문사는 보다는 P님을 더 좋아합니다. 부디 사제가 <나는 죽었다>라고 외치며 엎드리는 것처럼 P님의 하루하루가 첫날의 마음으로 이어가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매일 아침 신문을 열면서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10주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Y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