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이강숙의 장편소설 '젊은 음악가의 초상'을 읽고 2011/07/07
 

이강숙 장편소설 ‘ 젊은 음악가의 초상 ’을 읽고


 한국전쟁 전후에 태어나 힘든 어린 시절을 살아본 사람들은 음악의 꿈이 있었다하더라도 대부분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았다. 부잣집에 태어나 음악을 한 사람들도 있지만 가난한 집에 태어나 몸속에서 끓고 있는 음악을 다스리지 못해서 한을 품고 살아간 삶도 있기 마련이다. 이시대의 모든 학부모들의 꿈은 자식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 얻어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이라 여겼다. 그것을 출세라 했고 성공이라 여겼다. 2011년도가 되어서도 이런 부모의 소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작금의 교육에 대한 열기나 성공이라는 가치기준이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7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직도 우리사회는 음악에 대하여 예술에 대하여 무식함조차 면치 못한 단계이다. 음악을 술자리의 여흥 정도로 여기거나 영혼의 밥인 음악보다는 비만을 넘어 다이어트에 매진하면서도 경제, 오로지 그 빌어먹을 경제에만 매진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신문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오로지 경제를 외치는 바람에 도무지 다른 것들은 숨쉬기조차 어려운 혼돈의 시대에 러시아에서 열린 제 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는 성악, 피아노, 바이올린 부분에서 한국 어린 음악가들이 최고의 성적을 이루는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음악을 우습게 아는 풍토에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상당부분 음악은 변방에 머무르고 오로지 국어, 영어, 수학만을 강요하는 교육현장에서 어찌하여 세계 최고의 콩쿠르라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석권하는 이변이 속출하는 것일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해답은 2011년 7월에 출판된 이강숙의 소설 ‘ 젊은 음악가의 초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번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2등을 한 손열음의 스승은 김대진이고 성악에서 공동 1위를 한 소프라노 서선영, 베이스 박종민은 최현수의 제자이다. 바이올린 부분의 3위를 한 이지혜는 김남윤의 제자이다. 이들 김남윤, 최현수, 김대진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며 수상자들은 이곳 학생들이었다. 한국의 줄리아드라드라는 이 학교를 설립하고 실기교육의 초석을 다진 분이 초대 총장을 지낸 이강숙이다. 즉 이강숙은 음악교육을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고 한국의 예술교육 형태를 혁신해야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학교 설립 초기였던 1990년대 초반에 명교수들을 영입하고 2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결과가 이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 핵심 기술과 마음이 소설 ‘ 젊은 음악가의 초상’에 모두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소설 ‘젊은 음악가의 초상’은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철우라는 소년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의 음악에 심취하여 격어야 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있다. 노래를 잘해서 도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고 피아노에 정신이 나가 피아노가 있는 곳이면 구걸을 서슴치 않는다.


‘ 음악심(音樂心)으로 불릴 수 있는 음악의 마음을 찾으려면 그 물(物)을 찾지 않고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믿음을 안은 철우는 피아노를 찾아 헤매는 생활, 아니 피아노 구걸 생활로 몸과 마음이 시달릴 때로 시달렸다’(65-66쪽) 이런 철우의 심정은 ‘ 왜 피아노가 있는 집에서 태어나지 못했던가. 자기 앞에 피아노가 항상 있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철우에겐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거리였다.’  (169쪽) 이처럼 피아노 구걸을 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을 온전히 음악으로 바치려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여기는 철우는 결국 피아노 구걸을 통해서 베토벤의 ‘월광곡’을 어설프게 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설픔이 아니라 새로운 우주의 발견이었다.


‘ 악보가 지시하고 있는 소리를 자기 손으로 더듬거리며 내는 소리는 이미 베토벤의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창조되는 철우의 분신이다. 철우의 분신과 베토벤이 만나는 기적의 순간이다. 그 자리에서 당장 죽어도 회한이라곤 없는, 철우의 천국으로 들어가게 할 통로의 열림이다.’ (180쪽)



무슨 일을 하든 이처럼 미쳐서 해본경험이 우리에게는 있는가 묻고 싶다. 미쳐야 미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진리는 작가 자신은 어린 시절 부터 몸소 행하였고 칠순이 된 지금도 그 믿음은 변하지 않는 것이기에 그가 학생으로 느꼈고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교수, 총장까지 역임하면서도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철우는 교육의 신을 무시하는 교육은 모두다 위선이라는 결론을 낸다. (중략) 인간을 교육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합격시키는 교육을 하니까요. 대학 입학이 인간다워지게 하는 것은 아니지요.‘(162쪽)


‘ 자기의 말이 음악을 통해서 가능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음악 공부를 하지 않고 영수국을 하라고 하면 그게 교육의 신이 원하는 교육일까요.’(164쪽)


이 소설에는 음악, 학교, 학부모, 여자가 중심테마로 되어있다. 이중 여자에 대한 갈망은 사춘기를 지내고 있는 철우의 당연한 홍역이지만 소설이 인간의 성적 욕망에 때한 끝없는 갈구만큼이나 음악에 대한 동경이 똑같이 일어난다. 즉 인간이 숙명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욕과 자신의 마음에서 울려오는 음악에 대한 목마름이 같은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 음악적 욕망이 더욱 강함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그것은 어쩌면 신내림일 것이다. ‘음악의 신내림.’ 그것을 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자신의 몸속에 ‘음악의 재능’이 존재하고 있는 한 끝없이 그쪽으로 가려고 하는 생태적 본능을 설명하기 위해 여자에 대한 동경을 비교 삼고 있다. 작가는 성욕은 언제나 몸에서 일어나는 본능이지만 관습이, 도덕이, 윤리감이 작동하는 한 다스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갈망은 그 어떤 설득이 가능치 않으며 학교나 학부모가 막을 수 있는, 막아서 될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일생이 고스란히 바쳐지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다. 태어나서 해야 할 가장 고귀한일이 음악 하는 것이라고 하는 믿는 사람에게는 그 인생 전체를 바친다는 것이다. 


‘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중략) 철우는 소리를 듣고 혼이 흔들렸다.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혼을 안고 “그래 맞다”라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내가 소유한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냐. 내 목숨이 중요하지. 내가 소유한 것을 바치는 게 아니라 내 목숨을 비치는 것이 옳다. 철우는 자신을 음악의 신에게 바치기로 결심한다. 어디선가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들린다.’(146-137쪽)   


구차한 가난이 덕지덕지 삶을 옥죄고 있었을 시절, 그 시대에 음악을 한다는 게 사치스러울 만큼 먹고 사는 게 궁했던 시절......, 그것은 36년생 작가의 시절이 그랬고 58년생 나의 시절도 다르지 않았으며, 나의 후배들도 또 이시대의 젊은이들도 같은 가시밭에 놓여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음악가의 초상’은 작가자신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지만 시공간을 뛰어 넘은 나의 이야기로 우리의 이야기 일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이 소설에 적용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악을 법으로, 의술로, 또 다른 예술로, 경영으로, 사업으로, 정치로, 학문으로 바꾸어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수학법칙 같은 진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쾌거의 연유를 정확히 설명해주는 이 소설은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가슴 저미는 내용이 가득한 이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야 할, 그래서 변해야할 우리의 거울 같은 소설이다.



  양정아 기뻐요! 음마 들어오자 마자 횡재한 기분. 이번 학기가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학긴데 '소설 속에 스며있는 음악의 세계'가 제 논문 제목입니다. 덜 다듬어졌기 했지만. 이렇게 귀한 분을 여리거 드디어 뵙다니! 음마 화이팅입니다!     2013/01/25
   세 개의 헌금이야기 [4]  홍준철
   거칠음에 대한 생각  홍준철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Y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