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모짜르트 대관식 미사곡을 생각함. 2008/05/30

* 연주가는 작곡자의 영혼이 내 몸에 깃들게 하는 무당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하기도 하였지만 음악은 악보를 떠나면서 부터는 살아있는 영(에너지)의 상태가 되는 것도 인정해야만 할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품을 연주 할 때마다 작곡자의 생각이 어떠했는지가 궁굶 하기만 한데 살아있는 작곡자의 마음은 만나서 들어볼 수 있지만 죽은 작곡자는 유추나, 느낌으로 밖에 말할 수 없다. 작곡 노트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악보를 통해서 연주를 통해서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모차르트 대관식 미사를 통해서 모차르트 마음을 알아보기로 했다. 근거가 있기도 하고 허황되기도 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나 있는 그대로 적어보았다.  


대관식미사곡과 모차르트를 생각함.

1779년 23살의 나이, 죽기보다 싫었던 짤스부르크 콜로레도 대주교와 교회는 이미 모차르트 마음에는 없었다. 음악의 신동으로 태어나고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 유럽전역을 여행하며 완성된 음악적 자양분을 모차르트는 이제는 돈도 되고 명예도 얻을 수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음악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싶은 꿈을 꾸었다. 18세기의 문화지형을 잘 읽고 있었으니 그는 일생의 대박을 오페라에서 찾고 있었고 극장과 음악가, 그리도 자본이 풍부했던  빈을 꿈꾸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모차르트에게 짤스부르크는 작기만 하고 또 무덤 같은 곳이기도 했다. 어려서 아버지의 혹독한 교육을 받아야 했으니 아버지를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모든 것이 성직자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교회 환경도 모차르트에게는 감옥이었을 것이다.


대주교 입장에서는 모차르트가 제발 순종하는 착한 음악가요, 온전한 교회음악에 매진해주길 원했을 것이다. 신동 때부터 교회의 일꾼으로 키우고 싶었기에 이 말썽 많은 재능 꾼을 어떻게든 잡아놓으려 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이미 자신이 붙잡고 있기에는 너무 커버린 음악가였으며 사생활도 문란하기만 했다. 더구나 오페라에 정신이 팔려있었으니 대주교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재능은 아까우나 인간이 한심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 해서 불화도 심했고 급기야 ‘ 쥐새끼 같은 놈’이라는 욕을 했다는 기록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 갈등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다른 생각을 했다. 신앙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믿어야지 왜 교회나 대주교가 나서서 하나님 행세를 하느냐에 대한 불만과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해야 하건만 인간끼리 계급을 만들고 지배하는 중세 봉건주의적 잔재가 받아드리기 싫었을 것이 당연하다. 재능이 넘쳐 자신만만했고 젊은 피가 넘치는 23살에 자신을 옭아매는 환경에 넌덜머리가 났을 것이고 그래서 비밀 결사조직에도 가입했다. 1780년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빈으로 이주하게 됨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직전 년도인 1779년도의 모차르트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그해 3월에 작곡된 곡이 K317인 대관식 미사곡이다.


모차르트는 대관식 미사곡을 쓰면서 앞에서 말한 심경을 작품에 담았다. 아니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차르트 음악에는 초월된 세계만 있고 자신의 고민이 담겨져 있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그 반대이다. 천상의 음악을 향하고 있기는 하여도 분명 그의 작품 중에 모차르트가 녹아있다. 또한 후대의 음악학자들 중에는 모차르트에게 신앙심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신학자 칼 바르트는 모차르트는 분명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심이 있었다고 여러 정황을 들어 강변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대관식 미사곡에는 그의 신앙심이 분명히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평화에 대한 욕망은 그 무엇보다도 큰 것이어서 모차르트 자신의 평화는 물론이고 세상모두의 평화를 기원하는 함축된 의미가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음표 뒤에 숨은 모차르트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Kyrie에서 보면 시작부터 하나님께 강렬한 탄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세상의 온갖 부조리를 신에게 일러바치는 마음이리라. C major 3화성으로 시작하는 첫 화성은 곧바로 반주의 부점 리듬을 3번의 반복함으로 인간 내면의 모든 심경을 토로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꼭 숨겨두었던 것들을 긁어모으고 또 모아 토해내는 것처럼 kyrie를 외친다. 이점은 Gloria 첫 부분에도 방식만을 달리하여 같은 의미로 전개된다. 합창의 soprano 선율이 c-d-c-f로 상승되며 고조되는 점도 하나님하고만 말하고 싶은 것이 많고 많았음을 암시한다. 그리곤 다시 soprano solo의 단아한 기도가 나와 앞부분과는 극적인 대조를 보이면서 음악적으로는 반전되지만 의미로는 재생산-다른 방식으로 강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이 아름다운 선율은 다시 Agnus Dei에서도 Dona nobis pacem으로 반복 되는 바  kyrie에서 신에게 탄원 드린 내용이 바로 Pacem(평화)를 갈구하고 있음을 분명케 한다. 암울한 현실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자유와 평화를 신에게 달라고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Gloria에서도 paix(평화)가 3번이나 반복된다. et in terra pax(땅에는 평화)가 그것인데 앞서 gloria를 4번 반복하는 것이 하늘의 영광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하느님의 영광만큼이나 이 땅의 평화를 강조하기 위하여 pax, pax, pax를 반복하고 있다. (다른 작곡가의 미사곡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신학자 한스 큉도 이점을 지적한바 있다) 바로 뒤를 이어 bonae voluntatis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에게)라는 가사가 pp로 대비됨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바로 모차르트 자신이요, 대주교나 교회는 아니라는 부정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또한 Aguns Dei에서 보면 이러한 점이 절정에 달하는데 느린 soprano solo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이미 세상의 죄를 안고 죽은 신에 대하여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로 표현하며 miserere nobis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 ( 하나님도 이 곡에는 감동할 것만 같다. 이곡을 연주하는 속도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나는 빠르게 연주하는 것 보다 되도록 느리게 그러나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는 맑은 목소리로 부르는 것을 택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kyrie의 가사를 노래했던 첫 부분이 dona nobis pacem에 반복되고 이를 다시 합창이 받아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만 가지고 후반부 내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합창은 아우성으로 들린다. 신 앞에서 합법된 집회로 시위하는 외침으로 들린다는 말이다. 그만큼 합창의 모든 음들이 높아 인간의 절규로 변한다. 그 평화는 금방 이룩되는 평화로 보이지 않는다. 어렵게 그러나 언젠가는 되어야 할 평화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에서도 일부러 소프라노 음을 높여 외침처럼 들리게 하는 효과가 있는바 이곡에도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당시에는 소년합창이 소프라노를 담당하여 고음에는 자신이 있었을 것이나 그렇다 하더라도 하늘을 향해서 계속 찌르는 듯한 pacem 음의 효과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또한 다시 한 번 마지막 절정의 한마디 ‘pacem'을 강조하며 끝을 냄으로서 반복되는 pacem의 가사와 급작스러운 종지는 곡이 끝나고도 오랜 시간동안 여운으로 남게 만들고 진정한 평화에 대한 긴 생각을 이어가게 한다. 이렇게 많이 pacem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작곡한 작곡자는 18세기 당시에는 없다.     


이처럼 모차르트는 교회보다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대화를 하고 싶어 했고 또한 하나님이 가만 계시지 말고 제발 인간의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간곡한 탄원의 마음이 이 대관식 미사에 스며있음을 본다.  물론 역사적으로 나타난 모차르트의 사생활은 그리 신앙적이지 않았지만(그래서 모차르트 음악은 교회음악이 될 수 없다고 독일학자 티보는 거품을 물고 모차르트를 비판하였다.) 악보를 통해서 들어내는 모차르트의 깊은 내면세계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음을 알 수 있다. 말년에 그의 아버지가 병석에 누웠을 때 진심으로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오로지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시라’라는 편지를 보낼 만큼 교회는 부정했을망정 하나님은 부정하지 않은 심지가 깊은 신앙이었음도 느낄 수 있다.   


모차르트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가장 단순한 화성 안에서도 최상의 멜로디를 뽑아낼 줄 아는 천재였다. 천사의 음악을 만들어 낸다고 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낸 천사라고 표현하는 칼 바르트나, 영화 AMADEUS에서의 살리에르 독백 ‘ 위대한 작곡의 능력은 모차르트에게만 주시고 나는 그것을 감탄할 수 있는 능력만을 주셨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작곡된 모든 곡이 고른 완성도를 가진다.  하여 모차르트가 인류가 배출한 작곡자중의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의 작품 음표 음표에는 자신의 목마름과 평화를 위한 사상이 숨겨져 있음도 느껴지게 된다. 나는 그 점이 모차르트의 마음이라고 여기고 있다. 하나님께 하고 싶은 말,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 또 우리가 아직도 해야만 하는 말 자유와 평화 말이다.  




  홍준철 이거 뭔가 귀신들이 와서 읽는 듯함. ... 혹시 모짜르트!! ???     2008/08/24
  박상현 선생님 정말 신기합니다. 어떻게 이글에만... 정말 귀신이 와서 읽는듯합니다. ^^     2008/08/27
  전소영 칼럼 정말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 대관식 미사곡 정말 좋아하는데(특히 Agnus Dei!!) 요번 시몬느 프로그램에 있어서 기뻐요~~ (이 댓글은 아마도 못보실듯하지만ㅋㅋ) 이 글 맘에 새기고 노래해야겠네요. >.<     201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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