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지휘자를 위하여(서문) 2008/10/21
 

생명의 노래


꽃은 그렇게 피는 것이겠지요.


오랜 땅속 어두운 기다림에도

눈물로 버무린 흙을 먹고 또 먹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바람 부는 세상을 향해

곧게 솟아야 하겠지요.


알아주지 않는 고독 속에서도

몸을 찢어 피로 물들인 붉은 이파리를

순순히 내 놓아야 하겠지요.

내 피와 살 노래의 꽃은

그렇게 피는 것이겠지요.


(홍준철 2000) 



                   ‘ 합창 지휘자를 위하여’를 쓰면서...


 뒤 돌아보면 25년 넘게 지휘를 했으나 뭔가를 ‘알고 했다’ 보다는 ‘알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젊은 시절 성가대 대원으로 노래하면서 이건용 선생님 지휘를 보며 ‘나 저거 하고 싶다’는 마음하나로, 그 대책 없는 신 내림으로 그간의 인생을 갈아엎고 지휘만을 위해서 달려 온 세월이었다.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배움터는 지휘를 하는 것이라 믿었다. 간호전문대학, 신흥대학, 송파구립합창단, 교회성가대 지휘의 기회가 연이어 주어졌음은 운 좋은 행보였다. 현장보다 더 좋은 공부는 없었다. 지휘는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손과 몸, 마음이 함께 움직이며  음악의 굽이굽이를 타야하고 다시 단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어 소통하는 통합의 경지는 지휘를 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관객과 만나는 연주역시 성공과 실패의 많은 경험이 축적 되면서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이고 연주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는 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10년쯤 지나니 제법 구색이 갖추었음에도 목마름은 더욱 커지기만 하였다. 좀 더 분석적이며, 체계적이고, 철학적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휘의 그다음 세계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하고 필리핀 AILM(Asian Institute for Liturgy & Music . 아세아예전음악연구소)에서 열린 M. Berhmann의 지휘 워크숍에도 참여하게 됨으로 막혀있던 많은 목마름을 풀었다. 보통 1개월간의 합숙 워크숍을 두 번 참가하였으니 배운 양으로 보면 대학 수업으로 듣는 1-2년간의 양이었다. 여기서 그동안 듣지 못한 손에 관한 설명이라든지, 타법, 손의 느낌, 예비박 등을 체계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지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제2장 지휘자의 몸과 3장 비팅 테크닉의 일부는 M. Berhmann 교수에게 배운바 큼을 밝혀둔다. 


두 번의 필리핀 방문 후 교단에서 교회 지휘자들을 위한 지휘법 강사를 하게 되었다. 아직 몸에 완벽하게 적용시키지 못했음에도 필리핀에서 배운 것으로 가르쳤다. 덕분에 학생보다 더 빨리 몸으로 늘었다. 반복되는 강의로 제법 나의 지휘 스타일도 생겨났고 특별히 내 음악의 관점이 만들어 지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내 음악의 관점이란 지휘는 음악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접학문인 미술과 무용, 연극, 영화 등의 예술과 인문학 등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에서는 구도와 표현, 그리고 색감을 통한 소리의 색깔을, 무용에서는 손과 팔의 움직임을 통한 감정의 표현을, 연극에서는 갖가지 배역을 소화하는 음색, 가사를 해석하는 힘과 전달력을, 영화에서는 상황과 음악을 혼합하는 기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니 사람이 사는 모든 행위, 인간의 모든 감정, 운동성(에너지)을 가진 모든 것들,  자연의 모든 이치 등을 통해서 지휘나 음악이 살찌워짐도 알았다. 즉 흘러가는 물과 나무, 구름과 폭풍, 소나기와 이슬비, 안개, 바람과 고요, 아침 해와 저녁노을 등이 모두 음악과 닮아 있으며 자동차 운전과 등산, 수영과 달리기, 먹는 것과 배설, 사랑과 미움, 그리움과 슬픔, 기쁨과 환호, 분노와 아픔 등에서 지휘의 느낌과 음악의 운동성과 표현, 또한 마음으로 느끼는 감수성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이 음악으로 또 지휘로 번역됨을 알 수 있었고 본문의 곳곳에 이런 필자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필자는 80년대부터 한국의 합창음악은 왜 없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시작하였는데 Gregorian chant와 Palestrina나 르네상스시대의 작품과 고전과 낭만, 영국합창문헌과 미국, 러시아와 동구권, 아세아 권의 합창문헌을 접하면서 또 지휘하면서 좋기는 좋은데 한국작곡자의 작품은 왜 이 정도로 못쓰며 많이 불려 지지 않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의 발로였다. 작곡가 이건용 선생님이 이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또한 빼어난 합창작품으로 선생님 곡을 많이 연주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다. 하여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6년 봄부터 이강숙, 이건용, 그리고 필자는 한국에 창작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합창단이 있어야 한다는 이론을 실천에 옮기는 것에 동참키로 하고 그해 가을 합창단 ‘ 음악이있는마을’을 창단하고 상임지휘를 하였다. 이 합창단은 아마추어지만 실력은 높아서 많은 곡들을 소화할 수 있었고 재정도 남지 않았으나 부족하지도 않아 창작위촉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간 이영조, 이건용, 이찬수, 신동일, 류건주, 노선락, 김대성, J. Baes, F.F. Feliciano, 류형선, 강은수 등의 작곡가에게 위촉을 꾸준히 하였다. 그러면서 한국창작 작품들의 레퍼토리를 조금씩 쌓아가는 계기가 되었는바 제 5장 한국합창음악의 발전은 그러한 과정을 적은 것이다.

또한 그 즈음 성공회대학 대학원에 교회음악과가 생기면서 겸임교수로 강의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 책을 쓴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표피적인 강의로는 대학원생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없는 일이었다.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고 구체적인 설명, 그리고 연습계획이 필요했다. 또한 지휘가 단순 기술에 머물지 않고 예술의 경지까지 갈수 있는 힘을 길러주려면 보다 폭넓은 경험을 토대로 한 이론이 필요하였다. 하여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였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때하여 집요하게 다시 질문해 본 것이다. 2박은 왜 4박과는 다르다는 것인가?, 2박의 의미는 뭐고 4박의 의미는 뭔가?, 그렇다면 3박은 무엇이고 6박은 무엇인가?, 분할박이란 복잡한 것을 왜 만들었나?, 섞은 박자의 도형은 왜 없나?, 손짓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휘는 마임인가 무용인가?, 팔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와♩♪를 1beating에서 구분할 방법은 무엇인가?, b과 #의 의미는 무엇인가?, 리듬의 의미는 무엇인가?, 음악에 기(氣)를 불어 넣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국적 발성은 무엇인가? 한국어 발음은 어떻게 해야 선명하게 전달되나? 꾸밈음과 시김새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통 장단을 위한 beating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곡 해석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음정을 어떻게 해야 바르게 낼 수 있게 가르치는가?, 어느 때 음정을 정확하게 내면 안 되나? 지휘자가 어떻게 해야 단원들이 행복하단 말인가?, 단원들은 왜 합창단에 오나?, 지휘자가 관객을 어떻게 행복하게 한단 말인가? 왜 우리는 합창을 하며 연주를 하는가?, 도도채 지휘자는 이 사회에서 무엇인가? 등을 다시 묻고 또 물으며 생각하였다. 의문점들 중 어떤 것들은 아직도 대답 없는 질문으로 남아 있기도 하였지만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의 연습과 연주들을 통하여 하나씩 풀어나갔고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1장 지휘자의 조건, 3장 박자 젓기, 4장 리허설 테크닉, 5장 한국합창음악, 6장 합창단 창단과 운영에 관한 부분들은 이런 고민의 결과를 적은 것이다.


25년간의 지휘, 단편적으로 쌓은 지식들, 질문의 결과들, 참고 문헌, 강의록 등을 기반으로 틈틈이 조금씩 썼는데 진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좀 더 많은 자료를 연구할 시간이 필요했다. 4년간 써온 것을 본격적인 집필을 위해서 2007년도 가을부터 만해마을, 강촌 프란시스 수도원, 성공회대학교 도서관 등을 전전했다. 고치고 또 고쳐 여러 번의 교정을 보면서 보강했지만 총 6장 26목에 대하여 더 질문하고, 더 연구해서 써야 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찌하랴.. 평생 교정만 볼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우선 세상에 내어 놓는다.  


처음에는 총 40여곡이 넘는 예시악보도 한국창작음악으로만 넣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적용의 한계를 느껴 23곡으로 만족해야했다. 이건용 선생님의 작품에서 많은 예시를 찾을 수 있었으나 되도록 다른 분의 창작 작품에서도 그 예를 찾았고 외국 곡에서도 훌륭한 범례가 있는 것은 개의치 않고 실었다. 또한 한국합창음악에 대한 작품소개나 발음에 대해서 서술하였고 합창단 운영과 기획에 관해서도 튼튼한 구성력과 연주력을 가진 음악이있는마을 12년 동안의 지휘 경험을 피력함으로서 한국 상황에 맞는 모델을 제시해 보려 하였다. 또한 한국적 표현들은 외국표기만 쓰지 않고 혼용해서 썼다. 예컨대 맺고(긴장, tension)과 풀다(이완, relax)가 그러하다. 하지만 온전히 한국적인 어법에서 지휘에 관한 서술은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나 가능 할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풍성한 서양음악과 같이 한국창작음악이 그 수가 넘치고 왕성하게 연주 될 때 온전한 ‘ 한국합창 지휘자를 위하여’라는 개정판이 가능 할 것이다. 본 책은 그를 위해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는다.   


이 책을 쓰면서 나름대로 음악에 대한 깨달음을 다시 한 번 확신하기도 하였는데  ‘음악은 정성을 다해야 그 온전한 모습이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순간에 표현되는 것이고 그것이 이어져 전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동일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잘못된 표현과 적당주의로 버무린 음악은 살아있지 못함이 당연하다. 필자는 이점을 그동안 합창단원들이나 성가대원,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였다. 헌신해야 한다. 자식을 키우는 어미의 마음으로 노심초사하며 음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겸손하게 음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인내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말로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생명의 노래’란 시로도 썼고 이영조 선생님과 F.F.Feliciano 선생님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연주하기도 하였다.


합창단원들은 작은 시간과 정성을 드려 커다란 효과를 내는 음악을 원하는지 모른다. 현대는 경제적 고효율의 시대이며 감각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은 도공의 길(道)처럼 길고 긴 반복의 고통스러운 연습을 이겨내야 하며 또한 온몸을 다하는 정성이 있어야  비로써 하나씩 온전한 음악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소멸될 수 있으며 마침내 한줌 감동이 남는 고된 작업이다. 몇 십 번의 연습 끝에 몇 분짜리 곡 하나 연주하는 이런 터무니없는 비경제적 활동이 합창이다. 일본의 어느 합창단 이름이 그래서 ‘하루살이’이기도하다. 이 중심에 지휘자가 있다. 지휘자의 보이지 않는 헌신은 그래서 천형(天刑)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덜컹 머리 깎고 산에 가는 중처럼 그 수행의 길을 가겠다고 시작하는 새내기 지휘자들에게 이 책이 자그마한 위안과 길동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필자가 겪은 긴 시행착오를 그들은 한숨에 뛰어 넘어 더 높은 지휘의 경지로 갈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뵈어 온지 13년 동안 삶으로, 강연으로, 대화로 큰 가르침을 주신 것도 모자라 책을 쓰는 것에 대하여 ‘책 잘되 갑니까? ’라고 끝없이 질문해주심으로 덜컥 주저 않거나 게으름 피울 때 정신 차리게 하시고, ‘누구나 책을 쓰고 싶어 하지만 시작하는 사람은 적고 끝내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하시며 격려해 주신 이강숙 선생님, 필자를 음악의 길로 또 지휘자의 길로 들게 하신 이건용 선생님께 졸고의 부끄러움을 뒤로 하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함께 음악을 통해 사는 기쁨을 얻으며 지휘와 기획에 훌륭한 경험을 쌓게 해준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제자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작업 막판, 사진과 그림 편집을 위해 도와준 홍재범에게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동료 음악가의 입장에서 해박하고 예리한 감수를 해준 Organist 박옥주 선생님, 편집디자인을 자청한 오래전 약속을 지켜준 디자인 명작의 고은경 대표님, 출판사 ‘         ’     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2008년 10월 어느 날      홍 준 철










  박상현 축하드립니다. ^^
와 재범이 재주가 많으네 ㅎ
    2008/10/21
  강형준 '음악은 정성을 다해야 그 온전한 모습이 나타난다' 정말 명언입니다. 깊이 가슴속에 새기겠습니다.
근데 책 제목이 영 고리타분하네요...
요즘 신세대 컨셉에 맞춰서 좀 자극적인 제목으로 쓰시지
예) 지휘 3일만 하면 홍준철만큼 할 수 있다
정명훈 따라잡기
지휘가 제일 쉬웠어요 등등
    2008/10/21
  유호근 축하드립니다...선생님!!!     2008/10/21
  강은수 우와~~~
10월의 어느날에...
음마는 태어났고
10월의 어느날에...
책이 세상에 나오다...

감축아니드릴수 없사옵나이다...
    2008/10/21
  박옥주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한듯한데..제 이름이 부끄럽네요..
축하드립니다 ...확언컨대...이책 대박납니다.ㅋㅋㅋ
    2008/10/21
  김지형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2008/10/28
  이혜연 이걸 왜 지금 읽엇을까요.. 어서 책을 보고싶어요~ 싸인 받아야지~ ^^     200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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