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정명훈과 한국음악계를 생각함. 2003/02/07
오랜만에 정명훈의 지휘를 2003년도 신년음악회(1월4일 예술의 전당)를 통해서 보았다. 그는  언제나 분명하고 확신에 차있으며 가차없는 예비 박(prepare beating)의 연속으로 음악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불어넣는 지휘자이다. 또한 온몸으로 음악을 표현할 줄 아는 지휘자이며 베토벤, 브람스, 라벨에 이르기까지 그의 명쾌한 해석과 몸 동작은 연주자뿐만 아니라 관객까지도 압도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명훈 지휘의 음악회를 보면 극장 안 모두가 행복해진다.

당연히 그의 무게는 유난히 커질 수밖에 없다. 무대의 주인공이 교향악단이 되기도 어려웠고 독주의 기량을 뽐내는 협연자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그만이 유일한 빛으로 빛나고있었다. 이점은 사실 정명훈 스스로가 일부러 돋보이게 하려는 자만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유치원 꼬맹이와 대학생이 함께 서있을 때의 확연한 차이처럼 음악적  기량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음악계를 다시 돌아보는 씁쓸한 면도 있는 음악회였다.

정명훈은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는다. 말끝마다 '나는 한국이 고향이고 한국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가끔씩 한국에 들러 우리들 가슴에 흠모의 정만 깊이 남긴 채 휙 떠나버리는 그 점이 나는 야속했었다. 사랑한다하면 같이 있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먹고 살만큼 돈도 벌었을 테니 국내에 적을 두고 한국의 교향악단을 헌신적으로 키우고 외국은 객원지휘를 하면 되지 않을 까라는 생각만 했기 때문인데 2003년도 신년음악회를 보면서 정명훈이 한국에 오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고 또 그동안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외국을 배회하는 정명훈을 깊이 이해하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의 그릇이 정명훈을 담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작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한국 교향악단의 수준이 그의 음악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이다. 당일 연주한 오케스트라도 국내에서는 손꼽는 연주단체요, 발군의 노력을 했음에도 프로그램 중 베토벤과 브람스는 단원들이 지휘자를 따라오지 못했다. 힘에 겨워하는 모습이 영역했고 정명훈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뒤편 몇 십 미터 떨어진 나까지 전해졌다. 후반 라벨 교항곡의 짜릿함이 없었다면 음악회는 실패할 수도 있을 만큼 전반부는 위험했다. 세계적 수준에 비교해 우리 악단은 20년 정도는 족히 뒤져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고스란히 증명되는 셈이었다.  

히딩크는 짧은 기간에 한국축구를 세계 4강에 들게 하지 않았느냐? 정명훈도 똑같이 한국의 교향악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느냐? 라는 무식한 발상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을 갖추고도 20년은 족히 걸린다. 그만큼 예술의 숨은 길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음악을 다 담지 못해 헤매는 연주단체와 오랜 시간 같이 있고 싶지 않은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사랑하면 해결되는 것도 아니요, 돈이 해결해 줄 수도 없는 산만한 벽을 느끼게 하였다. 그가 성취하고 싶은 높은 감성의 세계를 담보하고 있지 않는 한 우리는 그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은 그를 낳았을 뿐 기르지는 못했고 더더욱 그의 활동무대로는 턱없기만 하다. 정명훈이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다.

신기에 가까운 라벨의 연주로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앙콜을 극구 사양하다가 겨우 소품 한 곡만을 선사하고 무대를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쓸쓸함 마저 들었다.  

< 그래 ! 가거라 척박한 이 땅을 그래도 낳아준 조국이라고 일년에 몇 번 와주는 것 만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더 큰 세상에서 더 넓은 물에서 당신의 큰 이상을 마음껏 펼치며 살 수 있도록 가거라 ! 언젠가 근육의 힘 부치고 늙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라도 고국에 돌아와 후학들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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