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친구를 위하여... 2003/11/13
일본합창단과 함께 <한일합창음악회>를 기획하여 지난 8월에 일본에 간 적이 있다. 나는 ‘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쪽으로 주제를 몰고 갔고 일본 합창단 쪽에서는 신오쿠보역에서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 추모곡을 작곡하여 연주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나는  반대하였다. 사실 나의 반대는 지극히 감정적인 것인데 한국사람이 일본 사람을 위해 죽은 일을 추모나 기리고 싶지 않은 생각이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추모하고 기려서 그 다음에 그럴 일이 있으면 또 죽으라고?.....’  역사의 응어리를 안고 사는 나로서는 이성적이지 못했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이 추모 곡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작곡은 되었고 일본공연과 한국공연에서 부르기로 최종 합의하였다.  이건용 작곡의 이 곡은 요한 복음의 ‘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없네’로 시작하여 두 영혼이 말하는 ‘ 그러니  친구여 함께 가세 저 선로를 넘고 온갖 벽들을 넘어서’ 그리고 마지막에 그 두 사람의 숭고한 뜻이 ‘ 사람에게로 나에게로.....’라는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곡이 너무 아려서 부를 때마다 사람 가슴을 후벼팠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처음 반대했던 나 역시 추모의 마음이 더해갔음도 말 할 것도 없다.  

동경에서 일본 합창단과의 합동연습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관광버스를 마다하고 신 오쿠보 역에서 전철을 타기로 했다. 그곳에서 사고 현장을 보고 추모비에 묵념이라고 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저녁 9시쯤 한갓지지만은 않은 전철역에 가보니 플랫 홈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그마하게 붙은 추모 동판을 발견하였다. 수상부터 일본 전국민이 야단 법석을 떤 것에 비해 추모 비도 아니고 벽에 붙은 동판은 조촐하기 그지없었다.  40명의 단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둥그렇게 반원을 그리며 동판을 에워쌌다. 그리고 묵념을 한 후에 추모곡 ‘친구를 위하여’를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이 갑작스러운 헤프닝은 지휘자인 나의 계산된 행동이었는데 이 곡을 무대위에서 초연하기 보다는 이 동판앞에서  초연해야 한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많이들 울었다. 마음속으로 울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푸르디 푸른 청춘 - 이수현이 가여워서 울기도 했지만 억울해서 울기도 했던 것 같다. 역무원이 놀라서 올라오고 사전 신고를 하지 않은 돌출행동을 멈추라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곡을 끝까지 불렀다.

‘ 수현이가 사람을 구하러 선로에 뛰여 들때 역무원에게 사전허가 받고 했냐 이놈아 ! ’

동판 앞에서 초연을 끝내고 이수현이 뛰어들었다는 바로 그곳에 서 보았다. 반대편 차선으로 몸을 피할 수도 있어보였다. 나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 바보! 바보 ! 구해보다가 안되면 저편으로 몸을 날려 살았서도 훌륭한 일이었을 텐데..... 기여이 저를 죽이면서 까지  남을 살리다니... 바보 ... 바보.... 이제 날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이수현같이 의롭게 죽으면 살아남은 자는 빚을 진다. 아무리 화려한 언변으로 말해본들 그 모든 것들을 뛰어 넘고도 남는 이수현의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당할 재간이 없이 그대로 빚으로 남는다. 나는 그 선로변에서 깨달았다. 나는 <작은 유다>였고 이수현은 <작은 예수>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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