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구자범을 만나다. 2015/05/05
구자범을 만나다.

  

나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아니다. 음악을 하면서 직업병으로 얻어진 까칠함은 많은 사람들과 폭넓게 교재하지 못하는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유독 부산에 은둔하고 있는 지휘자 구자범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일식면도 없는 사람이고 한참 어린 사람이고 그것도 부산까지 가야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다는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그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고 하면 말이 될까? 아무튼 무언가에 홀리듯 나는 작곡가 이건용 선생님과 의기투합하여 모든 일정을 째고 그를 만나러 가기로 한 것이다. 음악적 일을 상의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그냥 보고 싶다는 마음하나로 봄볕이 터지도록 좋은 3월 어느 금요일 오후에 부산행 기차를 타고만 것이다.

  

해운대에서 구자범을 만나 그가 추천하는 미포 끝집, 바다가 보이는 방갈로에서 회를 시키고 잔을 기울였다. 처음 만남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취기가 오르면서 편안해 지기 시작했고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는 제안을 이건용 선생님이 한 이후로 40대, 50대, 60대의 연배의 의미는 잊은 채 취중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그의 말을 많이 듣고 싶었다.

  

구자범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마음속 응어리들이 아직 가시지 않았으리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 공부를 한 후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시향과 도립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갑자기 지휘봉을 놓고 모든 것을 뒤로하고 부산으로 내려온 그는 중저음의 특유의 말투로 이야기들을 쏟아놓았다. 한국 음악계에서 경험한 높은 벽에 대해 솔직 담백하게 풀어 놓은 것이다. 철학도 출신답게 달변가였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톤을 높이면서 ....

  

해운대로 온 이유는 연고지가 있어서가 아니다 바다가 좋아서 왔을 뿐이다. 음악계를 떠났다고들 말 하는데 실은 음악계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담기지 못했으니 떠난 것도 아니라고....,

  

검은 옷만 입는 이유는 어느 곳에도 다 어울리는 옷이라서 그렇단다. 상가나 결혼식, 사람 만날 때나 연주회장 갈 때나 언제나 정장처럼 보인단다. 그의 양복 안쪽은 심하게 헤져있었다. 신발도 그렇고......, 그래서 별명이 해운대 까마귀란다



예민한 감수성과 자기 신념이 꽉 찬 지휘자 구자범. 야생의 날것으로 건강했다. 늑대였고 독수리였다. 관 주도 음악계가 이 건강한 영혼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날지 못하게 하고 우리에 가두고 길들이려 했기에 받은 상처가 많았을 것이다. 오로지 인간을 믿었고 앞뒤 안 가리고 지휘자의 길만을 살아가려 했었으니 음악을 좀 덜어내더라도, 소위 지혜로 통용되는 잔꾀와 전략의 강약과 완급도 조절했더라면 살아남았을 터이지만 그는 오로지 순수로 덤볐고 그 모든 것들이 시행착오로 또 나락으로 떨어지는 실패가 되었을는지는 모른다.

  

나는 좀 화가 났다. ‘ 이 사람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제도는 없나?’ 왜 독수리를 닭으로 키우려고만 하나? 조직에서 일하려면 그래야 한다? 조직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가? 누구 좋으라고 그 알량하고 무식하기 그지없는 관리자의 기준에 우주를 품은 대 음악가를 가두려하는가? 누굴 위해서? 왜 광활한 자연에 풀어 놓지 못하고 비좁은 개집과 닭장에만 가두려 하는가 말이다.

  

새벽으로 가는 그리고 좀 취했을 시간 이건용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속내를 들어 내 보이셨다. ‘ 실망하지 말라. 그리고 음악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영혼과 음악을 사랑한다. 세상이 남을 죽이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만 있는 동물의 왕국은 아니다. 우리를 봐라 아무 인연도 없는 당신을 만나러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 오로지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로 만나러 온 것 아니냐’는 말에 구자범은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한참을 울었다.

  


아~ 나는 그제야 내가 부산에 온 이유를 알았다. 나는 나를 아니, 우리를 보러 온 것이었다. 상처받고 웅크린 음악가......, 그는 우리 모든 음악가의 모습이었고 나였다.

  

헤어질 때 그는 처음보다 많이 편안해진 사람처럼 보였다. 다행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한없이 순수하려했고 음악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지휘자. 구자범... 우리에 가두어 놓아서는 안 될 해운대 바닷가를 주유하는 검은 까마귀 구자범... 부디 우리 사회의 예술 생태계가 건강해져 이 비범한 지휘자를 다시 온전히 날것으로 품기를 소망한다. 그래야 우리 음악계가 새롭게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파도는 무심히 미포 끝집 앞에서 그날도 일렁이고 있었다.


  진윤수 환경오염이라는게 비단 생태계에만 있는건 아닌가봅니다. 음악계를 오염시키는 이러한 작태가 더이상은 오염시키는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2015/05/06
   아프고 또 아팠던 음악회 [2]  홍준철
   지휘자의 연봉 [3]  홍준철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Y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