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단원이 지휘자를 키운다. 2011/06/09

단원이 지휘자를 키운다.


아주 오래전 내가 늦깎이 대학생시절인 26살 때에 교회의 어머니연합성가대를 지휘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성가대는 가장 어린 분이 32살로 보통은 4-50대가 주축인 성가대였다. 단원 모두 지휘자보다 연상이었으며 교회 연륜도 높으신 분들이었다.

나는 천성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 직성이 풀렸던 만큼 약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자의 권위를 내세우고 건방을 떨었으며 나이 드신 단원들을 거칠게 다루기도 했다. 그때 그분들이 참 잘 따라 주었다. 음악도 전적으로 내 뜻에 따라 주었고 인사를 먼저 하실 만큼 선생님 대접도 해주었다. 당시 나는 그렇게 된 것이 나의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의 힘과 조직을 장악하는 자신감에 근거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 성가대를 중간 휴식을 빼고도 16년쯤 지휘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나의 생각은 오만으로부터 오는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끄러울 뿐이다. 내가 그 잘난 음악의 카리스마로 성가대원들은 장악한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일부러 잡혀주신 것이다. 그분들은 열정만으로 밀어붙이는 나를 위해 기도했고 내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자리 잡힌 지휘자가 되도록 자신들을 그 도구로 내어 주신 헌신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한 합창단이 온전히 구성되며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아시고 따라주신 것이다. 이분들 나름대로 이견이 없을 수는 없었겠지만 참으로 현명한 선택으로 일관해 오셨다는 생각으로 뒤늦은 감사를 하고 있다.


합창은 지휘자를 중심으로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집단이다. 그것은 합창의 절대적 숙명과 같다고 생각한다. ‘ 군대와 음악은 독재하여야 한다’는 카라얀의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지휘자의 고유 권한을 건드려서는 지휘자가 온전히 지휘할 수 없게 된다. 지휘자가 그 자리에 있는 한 모든 것을 일임해야 한다. 단원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크고 작은 권한을 지휘자에게 주어야 그 힘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지휘자이다. 지휘자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다만 착시로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가끔씩 지휘자와 의견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대로 따라줄 정도의 용기가 단원들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단원들은 지휘자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연유로 단원들의 자리나 지휘자의 자리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휘자 자리에 한번 서보시라. 그곳은 천길 낭떠러지지에서 외줄을 타고 있는 곳이다. 균형의 최고치를 위해서 허공에 매인 외줄에 의지한 채 자신의 음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불안한 자리가 지휘자의 자리이다. 격려하고 따라주어야 겨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리이다. 무관심을 넘어 비난하고 심지어 줄을 흔들려고 한다면 지휘자는 쉽게 천길 아래로 떨어진다. 지휘자가 유난을 떨고 신비주의를 내세우고 핏대 올리며 예민하게 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느 여성합창단에서 새로 선발된 지휘자를 노련한 총무가 좌지우지하려 한다며 이에 대한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나는 앞서 말한 어머니 성가대의 예를 들어 주었다. 합창단에서 총무의 권한이 넘치고 넘쳐 지휘자에게 까지 미쳤다면 그것은 한낮 불행을 가득 잉태한 것과 같다. 절대로 그 합창단은 행복할 수 없다. 그 지휘자는 눈치 보기 시작하면서 자기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음악적인 색깔도 소멸된다. 결국 그 총무가 한일은 자신의 크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는 잠시의 쾌감이 있을 뿐이고 언제나 시끄럽고 노래 못하고 찌그러져가는 합창단의 총무로 남을 뿐이다. 그 총무는 현명한 총무가 아니다.


솔티는 지휘자를 호랑이 사육사에 비유했다. 틈을 보이는 순간 단원들에게 잡아먹힌다는 뜻인데 여러분의 지휘자는 어떤 지휘자인가? 그리고 여러분은 어떤 호랑이인가? 여러분은 크고 있고 또 지휘자도 크고 있는가?


단원이 지휘자를 키운다. 둘 사이는 서로 긍정의 힘으로 작용하여 커가기도 하고 서로 부정의 힘으로 망해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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