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모차르트의 레퀴엠 연주를 준비하며 .... 2008/07/03
 

 


1791년 여름 모차르트는 참으로 고달픈 삶을 살았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불렀어야 할 나이에 병은 깊어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도 감지되었다. 예수는 서른셋에 죽었다고는 하나 지금으로 보면 서른다섯이면 시퍼런 청년에 다름 아니다. 이 젊은 천재는 이제껏 실패한 대박의 꿈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작곡되는 ‘ 마술 피리’에 걸고 대 반전을 꾀하여야만 하는 절대 절명의 현실에 마닥뜨리고 있으면서 병까지 들어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머릿속에만 조합한 음악들을 펜으로 그려내고 피아노로 확인 하는 작업은 고되기만 한 것이었다. 요즘처럼 컴퓨터에서 악보를 그려주는 피날레나 앙코르 프로그램도 없었으니 전자 오르간을 치면 그대로 사보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손으로 하나하나 심어 가야하는 인고의 시간들에 다름 아니다. 얼마간의 수입은 지름신이 내린 부인 콘스탄체의 쇼핑과 씀씀이가 커 늘 허덕이는 상태였고, 병들고 부실한 모차르트 보다 열 살이나 어린 제자 쥐스마이어(당시 25세)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터였다. 어려서 천재라는 칭송이 전 유럽에 자자했던 모차르트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잊힌 인물이요, 괴팍한 성격과 언행 때문에 이래저래 사회에서는 왕따를 당한 터이니 소위 ‘ 나쁜 친구들 ’( 후대의 주변사람들이 표현한 말 / 아마도 매춘부와 이와 관련업종 사람들이 아니었을까?)라고만 친해 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50cm가 안 되는 키, 천연두로 인한 곰보, 큼지막한 코, 기형적으로 생긴 왼쪽 귀(이 귀를 가리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였다 함 ), 말년에 갈수록 뚱뚱해진 몸뿐만 아니라 그의 병력은 변태 기질과 장티푸스, 천연두, 두통, 치통, 고열, 복통, 수족부종, 다한증 등 다양하기 그지없다. 사인 또한 독살설, 수은 중독설, 비소 중독설 등이 이어진다. 후대 법의학자들은 수은중독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라는 것이 그의 병력에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즉 1891년 여름은 수은 중독으로 인한 고열, 복통, 수족부종, 다한증, 두통으로 시달려야 했다. 


작품을 써야 하는 것으로 보면 대작 마술피리와 더불어 오페라 ‘티토 왕의 자비’, 칸타타 3개, 성악곡, 클라리넷 협주곡들을 위촉 받은 터여서 온통 머릿속은 콩나물로 가득했을 터에 익명의 누군가가 레퀴엠을 작곡 해 달라 했으나 일의 양이 너무 많고, 또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저승사자가 위촉하는 기분도 들어 사양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듭된 요청과 많은 위촉료를 보장하고 이미 자신의 운명이 어디까지 라는 것을 아는 터이기도 했으니 모든 것을 포기한 심정으로 OK를 해버리고 만 것 아닐까? 이후로 늘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는 정신착란 증세까지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아무튼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은 모차르트 자신의 죽음과 작품을 바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엄청난 체력소모 속에서 진행되었다. 하여 여름을 그리 보내고 9월에 두 편의 오페라를 완성시키고 쉴 틈도 없이 남은 작곡들을 해나가는 초인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사실 이런 양은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몸을 혹사시킨 결과로 겨울로 접어들자 병은 더욱 깊어만 가고 모든 것의 한계를 느낀 모차르트는 마지막 작품인 레퀴엠을 완성치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어쩌면 그 곡을 완성하면 자신이 죽을까봐 무의식적으로 미루어 놓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쓴 진혼곡...... 12월 5일 죽기 전까지 introit와 kyrie만이 모차르트가 직접 쓴 곡이며 남은 곡들은 모차르트가 기본적으로 써놓은 것을 제자인 쥐스마이어에게 완성시키거나 전현 시작도 안한 곡들은 악상을 말로 전수 사후에 완성시킨 것이다. 이 장면이 영화 ‘Amadeus'에서는 궁정악장인 살리에르가 받아 적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이 아니다.


모차르트의 Reqiem(진혼곡)은 고전적이라기보다는 낭만에 가깝다. 특별히 연속되어지는 불협화음은 갈등을 길게 이어가며 조금 씩 조금 씩 협 화성으로 가는 과정을 길게 배치함으로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점이 백미이다. 더구나 이 긴 긴장감이 무조건 길게 늘려버린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니요, 이유 있게 늘린다 하더라도 연주자가 그를 인지하지 못하면 또한 실패하고 마는바 모차르트는 이점의 핵심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이를 오선지에 옮긴 섬세함의 인내성을 보인다.


그런데 나의 의문은 죽음을 앞에 두고 그런 인내가 어디에서 나올까 하는 것이다. 쉬고만 싶겠고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정신도 혼란스러웠을 터인데 레퀴엠을 연주해보면 그렇게 정교할 수 가 없다. 특별히 kyrie의 긴 fuga는 인간의 한계성을 초월한 위대성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이 fuga는 Bach 기법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지만 Bach의 기법에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놀랍다. 침착하게 한 part가 벽돌을 하나하나씩 쌓아가며 남은 3성부가 motive와 대선율(Counter point)을  교대로 조성을 바꾸어가며 이어가는 Fuga의 기술은 가히 커다란 건축물을 기초부터 오랜 시간 세심하게 쌓아가 드리어 완성의 마지막 순간에 그 환희를 마지막 두 마디로 응축하는 내공은 거룩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쯤 되니 모차르트가 자꾸 가엽게만 느껴진다. 마지막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생명을 토해내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 음악을 통해서 모차르트가 내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거봐 내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고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악보 속에 다 적어 놓았어. 정말 포기 하고 싶었어. 죽으면 끝이데 뭘 한 줄이라도 더 적어 내려고 그랬을까 말이야... 이건 사랑하기 때문이야 하나라도 더 내 머릿속에 있는 음악을 다 주고 싶었어... 내 생명으로 피어낸 꽃을 주기 위해서 .... 연주하는 네가 이점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해...’라고 말이다.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젊음이 채 가시지 않은 나이 서른다섯, 나는 그때 세상을 새롭게 시작하는 나이였건만 모차르트는 세상과 이별하고 말았다. 철든 모차르트가 죽으면서 남긴 레퀴엠을 오십이 넘어서도 철들지 못한 내가 연주하려한다. 그의 영혼이 내 몸뚱이를 매개로 나에게 올 것이다. 그리곤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을 또 그의 생각들을, 음악들을 나를 통해서 할 것이다. 내가 그의 영혼을 위로 하고 싶었다. 전 인류가 모차르트 없이는 못사는 세상이 되었지만 역사는 비정하게도 모차르트의 생애동안에는 야박하리만큼 홀대해버린 게 200년 후대의 내가 미안할 뿐이다. 원래 자기 것인 냥 그 위대한 음악을 받아먹을 줄만 알았지  모차르트의 그 마지막 여름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탄생250주년이라고 지랄을 떨면서 모차르트를 초콜릿에다가도 포장하여 팔아먹기는 했으되 이시대의 모차르트는 누구인가라고 고민해 보기나 했는가 말이다.


주검조차 시립묘지에 단체로 매장하여 사라진 기구한 운명이었지만 기일(12월 5일)에 모차르트를  불러 그가 작곡한 진혼곡을 다시 그를 위해서 들려주고 싶다. 顯考學生Mozart神位 라도 붙이고 말이다. 모차르트와 함께 객석에 앉아서 들으실 분들은 그때 오시라.  모차르트만 공짜고 산사람들은 입장료 만원 내시라.  2008.7.3





  박승애 모짜르트만 공짜고 산 사람들은 입장료 만원 내시라!!
완전 어록에 남을 경구네요..^_^
    2008/07/18
  홍완표 즉 공짜는 아무도 없다라는 뜻이군요.     2008/08/08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5번 [6]  홍준철
   모짜르트 대관식 미사곡을 생각함. [3]  홍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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