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늦는 관객 2013/09/27
늦는 관객

한국의 합창 연주회는(물론 다른 연주도 그렇기는 하지만) 대부분 상당수의 관객들이 늦게 연주장에 나타난다. 음악회를 일찍 시작해도 그렇고 늦게 시작해도 똑같다. 필자가 경험한 대부분의 공연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오죽하면 공연 전에 무대감독과의 미팅에서 몇 곡을 연주하고 늦은 관객을 입장 시킬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 주요한 협의사항이 되어 버릴 정도이다.

관객이 공연장에 늦으면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한다. 우선 제시간에 공연을 하기 힘들어진다. 입장을 공연시간과 겹쳐서 하니 공연시간 역시 5~10분 정도 늦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설을 하거나 인사말을 넣기도 하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시간을 잘 지켜온 관객들이 기다려야 하는 실례가 발생한다.

또한 첫 곡 후나 몇 곡이 끝난 후 입장하는 늦은 관객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아직 익숙해지지도 않은 어두운 계단을 내려오기도 하고 앞좌석과의 자리가 넓지도 않은 통로를 지나느라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내 자리, 네 자리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관객들도 있어 한순간 혼란의 밀물이 진정되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불필요한 시간은 음악회를 동강을 내버린다. 음악회 프로그램에 대하여 고민과 고민을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음악회 전체를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로 만드는 것이 많은데 이 시작 부분에서 늦게 온 관객들 때문에 그만 생채기가 나버린다. 꼭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나중에 이어서 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대화에서도 이런 경험이 있을 터이니 아주 곤혹스러운 것임을 잘 아실 것이다) 이럴 때 무대 위의 연주자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 마련이다. 어떤 지휘자들은 늦은 관객이 입장하는 시간을 위하여 잠시 무대 밖으로 나가 있거나 해설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끊어진 다리가 다시 이어지지 않음을 절감하는 터다.

국악공연에서 일어난 일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단체로 어르신들을 초대하여 1층 가장자리 양쪽에 좌석을 배정을 한 모양인데 그만 버스가 늦었는지 음악이 무르익은 두 곡이 끝나고서야 입장하면서 사단이 난 것이다. 인원도 많았고 앞자리였고 조명은 무대도 50%로 낮추었기 때문에 어두운 극장 안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인도자 되시는 분이 이리가라 저리가라, 안 보인다, 불을 켜라, 조용해라,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가로 질러 갔다가, 다시 되돌아가고, 빈 좌석에 앉아라, 내 자리다, ......, 한참의 소동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는데 이러는 동안 동강난 감상의 흐름은 차치하고라도 무대 위에서 협연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솔리스트와 지휘자의 표정이 아주 난감함으로 일그러져 다음 연주가 불안 할 정도였다. 다행이 그런대로 넘어갔지만 관객입장인 나에게는 한숨이 푹푹 나오는 장면들이었다. ‘ 왜 이렇게 되어야 하지?. 우리에게 문화선진국은 멀기만 한 것일까?. ’ 좀 일찍 모셔서 입장하게 하였으면 어디가 덧나나? 왜 우리는 이런 작은 것들을 극복하지 못하는 삼류 백성이 되었는가.. . . .

연주장에 늦는 관객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종의 미필적 고의의 폭력을 행사하는 결과를 낳는다. 연주자에게는 무거운 불안감을, 일찍 온 관객들에게는 온전히 음악을 감상하는 분위기를 해친데 대한 분노를 낳게 한다. 국민개인소득(GDP)이 2만불이 넘는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객들이 늦게 도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교통사정도 좋은 편이 아니고 직장에서의 칼 퇴근도 쉽지 않을 것이다. 같이 갈 애인도 만나야하고, 저녁도 먹어야 하고 등등......, 수없이 많이 해결해야하는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타당한 이유가 될까?

오래전에 조수미 독창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2,300석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99% 관객들이 10분전에 모두 들어왔다. 합창단 석까지 빼곡히 들어찬 것이다. 늦은 관객은 거의 없었다. 필자도 놀랐다. ‘ 아 ~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는 하는 구나 ’

2,300명의 관객이 그렇게 높은 충성도를 보이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우선 2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고 주차장은 난리가 난다. 주최 측은 전당 앞 광장까지 차를 올려 주차전쟁을 치른다. 한 시간 전에 이미 로비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주변 식당가는 줄을 서야하고 화장실에서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매표소의 줄은 줄어들 줄 모른다. 로비는 15분 전까지도 사람의 물결로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10분전에는 뛰는 관객들과 극장 안에는 자리를 찾아주는 안내원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하기만 하다. 5분전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나오고 튜닝 하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정각에 악장이 나와 튜닝을 하고 드디어 객석 조명이 어두워지며 무대의 조명을 키운다. 그리고 조수미와 지휘자가 등장하며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진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니커가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홀에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로 음악회를 연 적이 있다. 러시아 관객은 많이 늦었다. 시작 할 때 2/3정도 되었던 점유율은 연주회가 끝날 때쯤 거의 만석이 되었다. 연주 중에 2층에서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모든 것이 비디오에 담겨있다. 래틀과 단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어떤 인상을 러시아에서 받았을까?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 연주를 시시하게 볼만큼 러시아인들의 예술성은 높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러시아의 문화의 수준을 하향 평가했을까?

우리나라 합창연주회는 관객이 많지 않다. 전문합창이건 아마추어합창이건 사정이 궁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지휘자가 할인 입장권을 파느라 SNS를 뒤적여야 하는 오늘의 현실이다.

관객이 부지런해야, 또 치열해야 우리의 문화가 살 것이다. 음악회에 늦는 관객이 많을수록 우리는 찌질 한 후진국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 관객들이 그리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미아리 골목길 [5]  홍준철
   관객 유감  홍준철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Y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