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예술과 예술가를 보는 우리의 시각 2014/04/20
예술과 예술가를 보는 우리의 시각  



예술은 타협하는 종목이 아니다. 타협을 여러 번 반복하다보면 예술은 자꾸 그 속살과 양분이 깎여나가 그만그만한 크기와 질량의 보통 예술, 색깔 없는 것들만 남을 확률이 크다. 예술의 정보는 경제나 의학이나 과학의 정보와는 다르다. 정보를 공유할수록 수준이 높아지는 분야가 아니다. 예술은 그럴수록 공통분모에 집착하게 된다. 나만의 예술이 아니라 남과 같은 예술 말이다.  오히려 반대로 독방에서 외로움에 떨며 남과 다른 자신을 만들려고 괴로워하는 데서 새로운 창조적 에너지가 나온다. 이것은 상처 난 자존심에서 나오는 예술의 숙명이다.  

  


공연예술은 관객과 호흡해야 하는 절대적 위치에 있지만 또한 절대로 소통에만 온힘을 써서는 예술이 숨 쉬지 못한다. 적어도 예술적 창조는 고독하고 독창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작가 최인호가 후배  작가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충고한 진리이다.

  


불통을 조장하면서도 소통을 생각해야하는 이율배반적인 위치에서 예술가는 언제나 존재한다. 생계와 자신만의 독창성에 깊이를 더해가려하는 상반된 방향은 예술가가 어쩔 수 없이 져야할 슬픈 십자가일지 모른다. 또한 예술은 지금 사는 사회에서 꽃피우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안주하여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미적세계를 위한 도전의 연속이며 저항일 수도 있고 파괴일 수도 있고 일탈일 수도 있다. 그것은 도덕과 관습, 종교, 법을 초월하는 세계일 수도 있다. 예술은 그런 것들로 목을 조이면 금방 시들어가고 죽어간다. 괴테는 그래서 예술이 도덕적 효과는 가져오지만 예술가에게 도덕적인 것을 강요하면 안 된다고 까지 말한바 있다. 그러니 예술가가 예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지도자들에게 순응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은 오래되지 않아 스스로를 비예술가가로 만들어 놓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오히려 거친 들판과 하늘에서  자유를 누리는 호랑이, 독수리가 되려면 기득권이 주는 달콤한 유혹을 벗어나야 할지 모른다. 아니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인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환경을 어서 만들던가 말이다.

  


경제만이 우리의 살길이라 외치는 천박한 시대에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그리 녹녹치 않다.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는 우선 가난을 감수해야 한다. 자존심을 죽여야 돈벌이가 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시퍼렇게 날선 예술의 혼만은 가슴에 품고 살자. 잠시 숨겨놓을 수는 있어도 결코 버리지는 말자.

  


또한 예술과 예술가를 보는 시선 또한 이젠 수준 좀 높이자. 아직도 예술이 유흥정도라고 치부하는 수준이라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캄캄할 뿐이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 시는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지는 못하지만 자존감을 줍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를 좀 더 강조하여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 예술은 영혼의 밥이다.’ 안 먹으면 죽는, 인간에겐 필수 영양소이다. 영혼이 고파 자살하는 수가 세계 1위인 한국이다. 두 시간마다 세 명 이상 꼬박꼬박 자살한다. 영혼이 송두리째 병든 나라에서 어쩌면 그리도 예술을 모르는가.....

  


  김지형 시국이 어수선한데.. 시의적절한 글이네요..
우울우울해요.. ㅠ
    2014/04/22
   창작곡을 연주해야 하는 이유 [1]  홍준철
   건강한 합창단 [3]  홍준철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Y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