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    창작곡을 연주해야 하는 이유 2014/06/02
창작곡을 연주해야 하는 이유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의 일이다. 이미자, 조미미, 배호 등의 가수들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약주로 거나하게 취하시면 레코드판을 사가지고 오셔서 고물 전축에 걸고 들으시는 분이셨는데 이분이 술을 너무 많이 드시고 실수를 크게 한번 하셨다. 레코드 가게 점원에게 ‘ 내가 뽕짝만 듣는 줄 알아 ! 고상한 음악... 그 뭐냐?? 크라씩이라는 거 말야 ....  그런 것 좀 줘봐 ! ’  아버지의 객기를 능숙하게 이용한 점원의 수완에 그만 국산 판보다 몇 배나 비싼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레코드를 덜컹 사오시고 말았다. 당연히 그날 밤 어머니와 크게 한판 하셨으나 ‘ 인간은 크라씩을 들어야해 ! ’ 하시면서 이후로 당신의 실수를 어떻게든 정당화 시키시려고 알지도 못하는 그 교향곡을 자주 들으셨고 이내 잠이 드시곤 하셨다. 아버지의 실수가 확실 한 것은 이후 다시는 클래식 판을 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수혜자가 있었으니 바로 나였다. 단칸방에 옹색한 집안이었으니 적어도 그 이상한 음악을 의지와는 관계없이 10번 이상 들었고 형과는 다르게 그만 모든 곡을 외우게 된 것이었다.  이후 중학교에 진학해서 교과서에 나오는 2악장의 주제 선율에 가사를 붙인 ‘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을 부르면서 전곡을 외우고 있는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음악은 이렇게 인간에게 낯설게 다가와서 익숙해지고 나서야 그 음악을 진정으로 감상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 어떤 음악도 그럴 것이다. 바흐의 음악도 베토벤의 많은 곡들도 이런 익숙함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새롭게 작곡을 위촉하고 연주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 알려진 기존 곡을 연주하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렵다. 부르기도 어렵지만 듣기도 어렵다. 아이를 잉태하고 낳는 것만큼의 창조의 고통이 따른다. 더구나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연습하고 곡을 익히고 완성될 때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 모든 과정에는 실패할 요소들이 곳곳에 잠재되어 있다. 예컨대 연주자가 그 음악을 느끼지 못하고 연주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잘했어도 관객은 낮선 음악에는 방어막부터 치고 ‘ 잘못 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그 음악회는 졸음 음악회가 되어버리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데 왜 고생을 사서하는 것일까? 이미 잘 알려진 음악을 연주자들도 편하고 관객들도 편한데 뭐 때문에 서로 고생하느냐는 말이다. 나는 이 이유를 음악학자 이강숙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국어적 음악>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다시 말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어린아이가 자신의 모국어를 배우듯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에 맞는 한국의 음악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바흐와 베토벤은 독일의 모국어적 음악인 것처럼 한국도 한국의 모국어적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에 무관심을 넘어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는 주장만 한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음악은 만국 공통어가 아니다. 음악은 그 어법을 배워야 알아들을 수 있는 각기 다른 언어일 뿐이다. 시골 할머니에게 태진아, 장윤정의 노래가 모국어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모국어가 아니다. 그래서 못 알아듣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모국어적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우리사회가 공유해야하는 절대적 사명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 후세대들이 누려야할 음악의 유산이기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다시 우리의 모국어적 음악이 세계 속에서 공유되어 한국이 문화민족으로 꽃 피우기를 소망하는 이유에서 어렵기만 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것이다.

바흐의 작품과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등등의 작품을 가지고 독일이 위대한 문화선진국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의 작곡자들의 작품이 당당히 세계에 퍼지고 우리의 연주자들이 높은 개런티를 받고 초청받아 해외 연주를 하고 외국의 학생들이 우리나라 음악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오고, 우리는 국내대학만 나와도 세계적인 명문대학을 나온 음악가가 되는 그런 문화선진국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진실로, 진실로 그러고 싶다면 우리 작곡자들에게 창작곡 위촉하고 연주를 거듭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적인 작곡가가 나오는 것이고 다른 나라 사람은 흉내도 못내는 높은 예술적 경지의 작품들을 품은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며 덩달아 우리는 선진 문화시민이 되는 것이다. 음악의 역사는 작곡가의 역사라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영국이 그랬고 독일이 그렇고 프랑스가 그랬고, 러시아가 그랬고, 미국이 그렇지 않은가? 왜 우리는 그들을 우러러만 보고 숭배하기만 했지 우리가 그렇게 되려고 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그들을 소비하려고만 했지 우리를 생산하려하지 않는가?      

지구촌 곳곳에서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합창단들이 있어 자극이 된다. Taipei chamber choir는 <중국의 전설을 현대합창으로 그리고 세계로>, 일본의 오쿠보 합창단은 <일본어의 아름다움을 합창으로 그리고 세계로>, 필리핀 마드리갈 싱어즈는 <필리핀의 합창으로 세계로>등의 슬로건을 내 걸고 활동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합창으로 그리고 세계로>라는 목표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서 바흐나 멘델스죤이나 헨델이나 모차르트나 미국음악이나 러시아, 프랑스음악, 남미음악, 아프리카, 일본의 음악을 봐도 결코 늦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어린세대에게 빚을 지고 살아간다. 멍든 4월과 5월을 아프게 지내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 어린 세대들에게 살기 편안한 나라, 안전한 나라, 유학 안가도 되는 나라, 우리의 문화유산이 가득한 자랑스러운 나라를 물려주자.  진실로 ........ (Choir & Organ 2014. 6월호 칼럼)


  


  기자단공식 선생님말씀대로 우리는 그날을 위해서 잉태의 고통을 참아내고 있습니다.
6월22일 출산일이 기대됩니다. 그날까지 태교(연습과 준비) 열심히 할것을 다짐해봅니다
    2014/06/02
   스포츠와 음악을 생각한다. [3]  홍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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